흙 위에 돋아난 초록, 부추에서 시작된 고향 이야기

 

봄이 왔구나… 텃밭의 솔(부추)에서 시작된 고향의 기억 

봄이 왔구나.

 아침 공기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온기, 옷깃을 타고 스며드는 햇살, 그리고 푸릇푸릇 돋아나는 초록 잎들을 보며 비로소 실감한다.
 누군가에게 봄은 벚꽃이 피는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봄은 부추에서 시작된다. 

 고향에서는 부추를 ‘솔’이라고 불렀다. 

 참 소박한 이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밭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던 푸른 잎, 솔. 그 존재만으로도 봄이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외곽 지역에 위치한 거래처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텃밭 한켠에 자라나고 있는 부추를 발견했다. 
 흙 위에 힘차게 돋아난 부추 잎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딱히 말도 안 했는데, 문득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고향의 냄새, 그 시절의 기억들이 스르르 떠오르며 코끝이 찡해졌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흔한 나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부추는 고향이고 가족이며, 봄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아버지는 부추를 무척 좋아하셨다. 
봄이 되면 부추전부터 시작해서 부추겉절이, 부추된장국까지 부추 요리가 밥상 위에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솔은 기운 나는 풀이다.” 그래서였을까, 유난히 힘든 날이면 부추가 들어간 반찬이 더 자주 등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이자 응원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릴 적 부모님의 나이에 가까워진 내가, 이상하게도 점점 흙이 그리워진다. 

흙 냄새가 나는 삶,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커진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오며 잊고 있었던 것들, 자연 속에서 배웠던 인내와 감사, 뿌리 내린 삶의 소중함이 다시금 마음 속에서 자라난다. 
 봄볕 아래서 쑥쑥 자라는 부추처럼 나도 내 삶의 자리에서 다시 뿌리를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텃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도심 속에서도 작은 화분에 상추나 고추를 키우는 이들이 많아졌고,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종종 보인다. 
 나 역시 언젠가는 흙을 일구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아침이면 나만의 텃밭에서 싱그러운 채소를 따고, 그날 먹을 식재료를 직접 고르며 건강한 식탁을 꾸리는 삶. 
 어쩌면 그게 정말 ‘사는 맛’일지도 모른다. 거래처에서 본 그 텃밭의 부추는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 정성스레 가꿨을 작은 땅에서 봄이 자라고 있었고, 나에게는 그것이 계절을 넘어 마음의 봄으로 다가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고향의 기억이 불쑥 떠오를 때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은가.
 이제 봄이다. 올해는 부추 한 뿌리라도 심어볼까 싶다. 작은 화분이라도 좋다. 
 그 안에서 봄을 키우고, 기억을 키우고, 나를 키워보려 한다. 어린 시절 밭에서 봤던 푸른 솔처럼, 내 삶에도 푸르른 기운이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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